2016 올해의 사진
사진은 역사이고 기록이다

맑은 눈동자, 울음을 참는 듯한 표정, 영정 사진을 꼭 쥐고 있는 다섯 살 아이(왼쪽 사진). 그해 이 사진이 찍힌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도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는, 내게 솜이불과 이 사진으로 기억된다. 봄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목화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주었다. “6·25 때도 솜이불이 총알을 막았다.” 솜이불을 더 이상 덮지 않게 되었을 때, 사진은 독일 <슈피겔>에 실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렸다. 사진은 역사다.

1987년 6월 중학교 3학년생에게도 세상은 달리 보였다. 지금 내게 6월 항쟁은 사진 한 장으로 기억된다. 1987년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한국일보> 고명진 기자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했다.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마라’며 달려가는 사진은 6월 항쟁을 압축했다(오른쪽 사진). 지난 12월3일 촛불 시위에 나선 부산 시민들은 문현로터리까지 행진을 했다. 1987년 6월 항쟁을 상징한 그 장소에서 2016년 민주주의를 외쳤다. 사진은 기록이다.

지난 한 해 ‘촛불 민주주의’를 예고한 사건이 많았다. 의회 민주주의 체험장으로 기록된 필리버스터(2월), 여성혐오와 차별을 수면 위로 드러내게 만든 강남역 살인사건(5월), 죽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를 낱낱이 보여준 구의역 김군 사고(5월) 등 우리는 1년간 노동과 민주주의, 인권을 체험하고 예습했다. 11월과 12월, 주권자들은 광장으로 나섰다. 헌법을 무기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이 거대한 촛불 민주주의도 사진으로 기록되고 또 기억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을 지면에 초대한 이유다. 내로라하는 유명 사진가까지 27명이 <시사IN>과 협업했다. 큐레이터 역할을 한 홍진훤 사진가가 있어서 가능했다. 김애란 김세윤 김훈 김현 서명숙 손희정 송경동 엄기호 은유 이문재 조남주 진선미 최은영 황현산 등이 글을 보태며 지면을 더욱 풍성하게 꾸릴 수 있었다.

사진과 관련한 상세한 정보는 일부러 담지 않았다. 불친절해 보일 수 있다. 사진은 각자 해독하는 매체다. 독자가 자신의 해석으로 여백을 채워 나가기를 기대한다. 시사 주간지로서는 파격적인 ‘콜라보 기획’이다. 이 사진을 통해 한 해를 되돌아보고 내다보기를 바란다.

<시사IN> 편집국장 고제규

© 노순택
© 노순택
© 노순택
© 노순택
우리 유전자 안의 촛불

사진 노순택·글 김애란(소설가)

늦가을, 집회가 끝난 새벽 광장에 뒹구는 은행잎을 보았다. 푸른 잎이 노랗게 변한 모습이 어쩐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노랑이 우리와 함께 해주는 것 같아 고맙고 미안했다. 우리가 노랑을 어떻게 훼손했는지 나무들도 다 알 텐데 싶어.그리고 다시 집회, 집회…. 불빛이 커지는 걸 보았다. 이화여대에서 출발한 나비 떼가 강하고 지혜로운 날갯짓으로 끊임없이 불씨를 키우는 걸 보았다. 앞으로 닥칠 혼란과 환멸 안에서, 때론 잔잔해 사라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불을 보며 걸은 이 겨울의 경험이 우리 내면에 남긴 것은 누구도 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세대를 거듭하며, 역사의 어두운 혈관 속을 도는 노란빛으로 이어질 거다. 불씨처럼, 유전자처럼.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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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
© 주용성
동지는 간데없고 유령만 날아다니네

사진 주용성·글 고재열 기자

2월24일 서울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 유령 시민들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쳤다. 시민이지만 시민이 아닌 이들이, 시위지만 시위가 아닌 퍼포먼스를 했다. 실제 시민이 아닌 홀로그램 속의 유령 시민들이 “평화 시위 보장하라” “집회의 자유는 불법이 아니다”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허공을 행진했다.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주최한 이 홀로그램 시위는 세계에서 두 번째였다(그 전 시위는 스페인에서 있었던 ‘홀로그램 포 프리덤’). 21세기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20세기, 아니 19세기로 후퇴시키자 시민들은 22세기 시위 방식을 미리 가져와 저항했다. 교통 불편 등의 이유로 신고 집회의 80% 이상을 금지하고 물대포 사용량을 전년 대비 6배나 늘렸던 경찰은 관련 법규를 찾지 못했다며 유령 시민의 외침은 제지하지 않았다.

© 시사IN 신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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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겼던 말의 투쟁

사진 신선영 이명익·글 천관율 기자

의회는 내전을 대체하는 제도다. 총칼로 싸우지 않고 대표를 보내 말로 싸우는 제도가 의회다. 정치학계의 석학 아담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란 우리가 서로 죽이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체제다”라고 했다. 말은 경쟁자를 직접 죽일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무기다.192시간. 지난 2월23일부터 3월2일까지 9일 동안 진행된 테러방지법 의사진행 방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세계 최장 기록을 세웠다. 우리 세대가 지켜본 가장 끈질긴 말의 투쟁이었다. 의회에 남은 내전의 흔적과도 같았던 몸싸움과 물리력은 결정적으로 사라졌다. 내전에서 의회로, 우리는 이 놀라운 192시간 동안 또 한 걸음 전진했다.

©시사IN 신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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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석
소녀상은 용서를, 하고, 싶다

사진 박민석·글 송지혜 기자

소녀는 순간 할머니로 변했다. 할머니가 겪은 것을 아이들만은 다시 겪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침묵을 깨뜨렸다. 용서를 하고 싶다고. 용서란, 진실한 사과의 말을 들을 때에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 용서를, 하고, 싶다.영하의 겨울밤이 속절없이 흐른다. 털모자와 목도리, 털양말로 온기를 느낀다. “이제 더 이상 추워하지 말아요. 소녀상은 우리가 지킬게요. 할머니들은 마음 편히 주무세요.” 눈바람을 견딘 비닐 덮개가 여기저기 찢어져 있다.12월6일 할머니 한 분이 또 영면했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39명으로 줄었다.

© 시사IN 조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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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여왕’을 거부하다

사진 조남진 이명익 신선영·글 천관율 기자

‘선거의 여왕’만큼 역설투성이 표현도 흔치는 않다. 선거는 주권자의 뜻이 가장 명확히 확인되는 장이다. 이 1인 1표의 세계에, 결과를 제 마음대로 이끄는 여왕의 자리는 없다. 그저 주권자의 뜻에 가까이 자리 잡는 정치가가 있을 뿐이다.이것을 착각하던 여왕이 있었다. 몇 번의 성공한 자리 잡음으로 권력을 쟁취했던 그녀는, 모든 선거가 ‘여왕의 선거’라고 터무니없이 믿어버렸다. 2016년 4월 총선, 그녀의 정당은 참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으로 국회의장을 가져간 제20대 국회는 결국 여왕에게 폐위 통지서를 보냈다.주권자가 그런 착각을 바로잡는 도구도 선거다. 그래서 거기엔 여왕이 있을 수 없다. 있더라도 임시직이다.

©시사IN 조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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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IN 이명익
정부가 살해한 ‘우리의 소원’

사진 이명익·글 남문희 기자

갑작스러운 공단 폐쇄와 추방으로 야반도주하듯 쫓겨난 개성공단 기업들의 트럭 행렬이 벼랑 끝에 선 남북관계를 상징한다. 개성공단은 125개 입주 기업의 돈벌이 수단만은 아니었다. 북한 노동자 5만여 명과 그 가족 20여만 명, 그리고 평양과 북한 전역에 한국의 존재를 알리는 통일 교두보였다. 개성공단에서 흘러나온 초코파이와 각종 간식, 옷, 전기밥솥을 비롯한 전자제품은 북한의 장마당과 평양 중구역 시장으로 스며들어 한국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이 황금 같은 전진기지를 ‘통일 대박’을 외치던 정부가 목 졸라 죽여버렸다. 북한을 압박하면 2년 안에 통일이 온다는 한 민간인의 망령된 요설이 그 배경에 어른거린다는 얘기에 이르면 기가 막힐 뿐이다.남쪽과 협력이 차단됐다고 북한이 망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중국으로 협력선이 바뀔 뿐이다. 이 정부가 없앤 것은 공단 하나가 아니라 바로 통일이라는 남북의 미래인 것이다.

© 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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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들’이 던지는 메시지

사진 정성태·글 이문재(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체르노빌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우크라이나라고 답한다면 그는 미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체르노빌은 특정 지역이 아니다. 1986년 4월26일 이후 체르노빌은 지구이며 인류다. 아니 우리의 내면이다. 체르노빌 이전에 1945년 8월6일의 히로시마가 있었고 2011년 3월11일의 후쿠시마가 있다. 지난 세기 중반 이후 지구 표면 곳곳에서 핵실험이 꼬리를 물었고 북반구 도처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섰다. 특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본과 중국에 전 세계 원전의 4분의 1이 밀집해 있다. ‘핵의 다운타운’이다. 지속 가능한 문명을 상상하려다가도 원전을 떠올리면 앞이 캄캄해진다.원전·핵은 인류가 미래를 훔쳐다 쓰는 최악의 범죄자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문제는 정치, 권력에 눈먼 현실정치다. 에너지 주권을 현실정치에 맡겨놓는 한 미래는 없다. 나, 우리부터 주권자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을 넘어 세계시민으로 거듭나 지구적 차원에서 사유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체르노빌‘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최후의 메시지일 것이다.

©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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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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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철
주현이가 바라보고 있다

사진 박준수 이규철·글 김훈(소설가)

기울어진 선실에 물이 차오르고 젖은 핸드폰이 꺼졌을 때 아이들은 얼마나 무서웠고 얼마나 살고 싶었으랴. 죄 없는 사람들이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세월호 희생자 안주현군의 넋이 지난 3월에 성인이 되어서 아버지 안재수씨(오른쪽)가 따르는 술 한 잔을 받고 있다. 두 어른의 옆모습은 어둠에 잠겨 있고, 환한 사진틀 속에서 주현이는 살아 있는 자들의 세상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5·19 大淚) ‘국가 개조’를 다짐했으나, 세상은 더 깊은 악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노동하는 사람들의 작은 희망과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가 모두 배반당한 이 황잡한 세상을 주현이의 두 눈이 바라보고 있다. 저 시선에 무슨 답을 하랴. 빛은 사진틀 속, 주현이의 얼굴에 모여 있다.

©박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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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최루탄 가스를 가장 많이 마신 ‘백발 청년’

사진 채원희·글 주진우 기자

24년 전 그를 처음 보았다. 그는 백발이었고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최루탄이 날아다니던 광장에서 그는 꿈쩍도 않고 버티다가 쓰러졌다.세상에서 최루탄 가스를 가장 많이 마신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그는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나선 이후 광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명박 독재보다 더 나쁜 게 박근혜 독재 정권이야.”여든다섯 백기완은 철인이다. 항상 촛불을 들고 맨 앞에 선다. 결코 물러섬이 없다. 하지만 ‘백발의 청년’도 세월호 아이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린다.

© 시사IN 신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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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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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여자라서 죽는다

사진 신선영 양태훈·글 손희정(문화평론가)

사람은 죽는다. 사고로 죽고, 병들어 죽고, 나이 들어 죽고, 굶어 죽는다. 여자도 사람이므로 죽는다. 여자의 죽음에는 한 가지 원인이 추가된다. 때때로 그저 여자라서 죽는다. 이 사회는 죽음을 이용하여 여자에게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안긴다. 이는 자발적인 자기 단속으로 이어졌다.2016년 5월17일. 그날 이후로 우리는 여자라는 성별 자체가 위험을 초래하고 그 위험이 또 다른 위험으로 이어지는, 이 특수한 죽음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고 쓰고 떠들어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죽음의 조건을 밝히는 일이 기실 삶의 조건을 확장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배운다.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한계의 벽을 조금씩 밀어내고, 그렇게 삶의 반경을 넓히고 있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 죽음들’ 이후의 삶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시사IN 신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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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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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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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이 있기 전에 내가 있다

사진 이서연·글 조남주(소설가)

주먹만 한 자궁 안에 아기가 있었다. 짧은 팔다리를 뻗으며 자궁을 넓히던 그 아기로 인해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궁 안에는 또 무엇이 있었을까. 그 무엇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 내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 내 선택이었다. 무엇이 있기 전에 자궁이 있고, 자궁이 있기 전에 내가 있다. 내 몸과 내 인생과 내 미래, 내 모든 것이 걸린 일. 결정권은 오로지 나에게만 있다. 여자의 몸은 여자의 것이다.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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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렬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사진 장성렬·글 김현(시인)

지난 1월, 한국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했다. 수강생은 게이 아홉 명. 그들은 자신들의 첫사랑, 짝사랑, 커밍아웃 경험과 주변 친구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고백하듯 쓰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농염해져서 ‘동성 섹스’에 관한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남자 얘기를 쓰며 가장 ‘남자답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의 미래를 확보했다. 언젠가 나는 “남자와 남자로서 사랑한다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시에 적었다. 그 시의 제목은 ‘인권’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살아가며 배우지 말아야 할 말 중 하나는 절망이라고 말한 시인도 있으니, 분명히 배워야 할 말 중 하나가 인권이며 그 말에 미래가 있다고 어쩐지 말해보고 싶다. 강좌를 마치며 나는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이들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단체 사진을 찍었다. 셀카봉을 사용했다. 최근 나는 다시 시에 썼다. “허나 하느님/ 형들의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 성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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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은 세월호의 국제 버전이다

사진 성남훈·글 문정우 기자

유엔 난민기구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이미 전 세계 난민은 6000만명을 넘어섰다. 그중 51%가 아동이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전문가들은 주범이 글로벌 경제위기냐, 신제국주의냐를 놓고 다투는데 종범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바로 유엔이다. 난민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는 유일한 국제기구이기 때문이다. 유엔은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열강의 눈치를 보느라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차기 사무총장에 난민 전문가를 낙점한 것이 유엔의 절박한 사정을 대변한다. 난민 문제가 악화된 그 기간 유엔의 중심에 한국인 총장이 있었다는 게 아프다. 난민 문제는 세월호의 국제 버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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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
힘없는, 너는 나다

사진 정운·글 은유(작가)

‘열차는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굴러간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서울메트로 외주업체에서 일하던 김씨가 올해 5월28일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열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어 숨졌다. 스무 살 고인의 가방에는 컵라면 한 개와 정비도구, 숟가락이 뒹굴었다. 끼니 때울 시간도 없이 쫓기며 일하던 어느 청년 노동자는 ‘시간의 잔해’가 되었다.끼임, 굶음, 젊음, 죽음. 이 부조리한 슬픔은 도시를 감염시켰다. 시민들은 구의역에서 건국대병원 장례식장까지 추모 행진에 나섰다. 시민을 맞이한 유가족은 오열했고, 다 같이 맞절을 올렸다. 깊은 속죄의 진혼의식은 마지막 생일잔치가 되었다. 사고 다음 날이 고인의 생일이었다. 현재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에는 눈물 자국 같은 다짐이 아로새겨져 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나다’.

© 신병문
강이 썩기 전 사람이 먼저 썩었다

사진 신병문·글 이오성 기자

강은 역설적이게도 초록빛으로 썩어간다. 녹조 발생 메커니즘이 뭔지, 생화학적 산소요구량이 뭔지 몰라도 한 가지는 안다. 강은 단 한 번도 스스로 썩은 적이 없다. 누군가에 의해 여울이 사라지고 모래톱이 자취를 감춘 이래 강은 매 순간 정치·경제적으로 썩고 있다.강을 썩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단죄의 물줄기는 흐르지 않는다. 그저 강을 찾지 않는 것으로 침묵할 뿐이다. 창궐하는 초록빛 재앙 앞에서 우리는 최소한 부역자다.

© 시사IN 신선영
피해자의 자리는 없었다

사진 신선영·글 변진경 기자

지난 5월2일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의 사과 기자회견에 피해자는 초대받지 못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간 피해자와 가족들은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10초 동안 고개를 숙인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임원들의 진정성을 믿지 못했다.돌 지나서부터 12년째, 임성준군(13)은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숨을 쉴 수 있다. 그나마 아이는 살았다. 독극물인 줄 모르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가 폐가 딱딱하게 굳어 생을 잃은 사람이 1000여 명에 이른다. 여론에 밀려 사과는 했지만 기업들은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사태를 방치한 정부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넘치는데 가해자는 없다.

© 김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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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공장의 하루하루

사진 김석진·글 엄기호(국민대 사회학과 강사

한국에서 공부란 지식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 아니라 피부에 새기는 일이다. 배움은 심연, 영혼에 닿지 않고 표면, 피부에 머문다. 지식을 익혀서 다루는 법을 배우지 않고 노예의 몸에 신분을 인두로 지져 각인하듯 피부를 양피지 삼아 글을 새겨넣는다. 얼핏 감옥처럼 보이지만 여긴 피혁공장이다. 가죽일 뿐이다. 그러나 수능과 함께 우리는 이 껍질을 벗는다. 12년 무두질한, 평생 못 벗길 듯 무거운 가죽이지만 종잇장처럼 하늘로 날려버린다. 그것이 잠깐의 탈피일지라도.

©김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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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준
이화여대에서 시작된 느린 민주주의

사진 김현준·글 장일호 기자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해야 할 싸움을 피하지 않는 과정 속에 정의가 깃든다. 학교에 투입된 1600명 경찰에 맞서 ‘벗’들은 서로의 팔과 팔을 엮었다. ‘바위처럼’ 굳세야만 저항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라고 노래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개인들이 모였기에 가능한 싸움이었다. 민주주의라는 비효율의 세계는 관계의 평등과 서로를 향한 믿음으로 굴러간다는 것을 이들이 증명했다. 2016년 대통령 탄핵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화여대’라는 네 글자가 필요하다.

© 장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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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은 없다, 촛불은 있다

사진 장진영·글 김연희 기자

2016년 7월12일 이후 경상북도 성주는 전과 같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오늘 참외 몇 박스 땄어예?”라고 인사하던 주민들은 한여름 내내 참외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는 단어를 더 자주 입에 올렸다. 성주 참외가 ‘전자파 참외’가 되는 걸 막겠다며, 농부들은 수확을 앞둔 참외 비닐하우스를 갈아엎었다.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 주민들의 저항은 정부의 예상도, TK에 대한 편견도 뛰어넘었다. 평생 ‘1번’만 찍던 할매들이 난생처음 데모에 나섰다. “정부 하는 일에 이유가 있겠지”라던 주민들은 그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사드 예정지가 김천시 인근으로 변경되었지만, 주민들은 160여 일째 ‘한반도 사드 반대’ 촛불을 밝히고 있다.

©장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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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여리
파괴의 순간 추억의 시간이 짓밟힌다

사진 달여리·글 김세윤(영화 칼럼니스트)

사진이 보여주는 건 언제나 ‘순간’이지만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반드시 ‘시간’이다. 해가 지면 하나둘 불을 밝히던 백열전구의 시간, 그 불빛 아래 울고 웃으며 부딪던 소주잔의 시간, 술잔의 주인들이 떠난 자리를 분주히 치우며 새벽을 맞이하던 상인들의 시간. 그 애틋하고 악착같은 ‘시간’이 통째로 짓밟히는 ‘순간’이다, 이 사진이 붙잡은 것은.그날, 30년의 흔적을 지우는 데 고작 3시간 걸렸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삶’을 위해 ‘반질반질 윤이 나는 생’이 또 버려졌다. 그렇게 말끔해진 통학 길에서 래미안의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온통 부수고, 밀어내고, 무너뜨리는 시대의 한복판을 지나며 푸르지오의 아이들은 어떤 꿈을 꾸게 될까. ‘적자생존’이 정글의 법칙이라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문명의 법칙은 ‘약자 공존’이어야 하지 않을까.

© CaKon
화려하게 황폐하다

사진 CaKon·글 이종태 기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 광화문의 지하 통로는 ‘화려하게 황폐하다’. 공간을 가득 채운 차갑고 푸르스름한 광휘. 천장의 LED등을 반사하는 대리석 바닥이 마치 호수의 수면처럼 잔잔하게 출렁인다. GDP 세계 10위권 국가 대한민국의 공공시설은 초라한 주민들을 압도할 정도의 격을 갖추었다. 화려한 통로는 외롭다. 떠들썩하게 정담을 나누고 혹은 시시껄렁한 말다툼이나 하면서도 공간에 활기를 보태던 취객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공간’의 미래를 위한 보증서이자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대표적 장식품이랄 수 있는 광고판들도 핏기 없이 하얗게 늘어서 있을 뿐이다.세상은 갈수록 화려해지고, 그 화려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한쪽에서는 풍요가 증가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 풍요에 차마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늘어난다. 화려한 황폐함은 시장경제의 대표적인 ‘동맥경화 징후’다. 그 막힌 핏줄 속을 구매력 없는 젊은이들이 터벅터벅 쓸쓸히 걸어간다.

© 김지연
두 개의 조국 하나의 그리움

사진 김지연·글 장일호 기자

조금은 예측 가능했으면 좋았을 텐데. 태어났을 때는 몰랐지. 동토 위를 삶의 근거지로 삼게 될 줄은. 사할린으로 오기까지, 사할린에서 살기까지. 조선인이었다가 일본인이 되었고, 오랜 시간 무국적자였고 한때는 소련인이었던 사람들. 두 나라 국기와 두 정상 사진을 삶의 배경으로 붙든 얼굴과 손의 주름마다 신산한 세월이 고였다. 고향이라는 게, 조국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저 오래된 시간을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 조진섭
© 조진섭
© 조진섭
그들의 불안한 안전

사진 조진섭·글 김동인 기자

모하메드는 살아남기 위해 고향인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떠났다. 약 3800㎞. 그토록 꿈꾸던 독일에 도착했다. 독일 정부는 그에게 약간의 지원금과 살아갈 거주지, 그리고 그가 누리지 못했던 ‘안전’을 제공했다.그러나 그것은 불안과 두려움이 깃든 안전이었다. 총알과 폭탄의 공포는 피했지만, 불안정한 유럽 난민정책은 그에게 또 다른 걱정이다. 프랑스 파리와 니스에서, 독일 뮌헨과 베를린에서 잇달아 테러가 일어나면서, 독일 정부의 ‘인도주의적 난민 지원’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거주 허가가 언제 중단될지 알 수 없다. 시리아에서도, 독일에서도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그의 유일한 바람은 하루빨리 고향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조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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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IN 이명익
그의 무덤에 사죄하라

사진 이명익·글 김연희 기자

물대포 조준 사격으로 한 시민의 목숨을 빼앗아간 공권력은 그의 시신까지 노렸다. 지난 9월25일, 농민 백남기씨가 사망했다. 백씨가 눈을 감자, 경찰은 서울대병원을 둘러쌌다. 부검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장례식장에 몰려온 시민들은 영안실 앞을 지키며 밤을 새웠다. 경찰은 한 달을 꼬박 넘긴 뒤에야 부검을 포기했다. 백씨의 둘째 딸 민주화씨는 SNS에 아버지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띄웠다. “이쁜 손자 2년밖에 못 보여줘서 참 미안하당. 사랑해 아빠.” 유가족은 아직까지 정부와 경찰의 사과를 받지 못했다.

© 신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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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는 송구스럽지 않은가?

사진 신웅재 정택용·글 최은영(소설가)

78명 사망, 224명의 직업병 피해자를 낳은 삼성 반도체·LCD 공장.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2년간 일하다 스물세 살에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부친에게 ‘입막음’으로 500만원을 건넨 삼성. 500만원. 그들이 생각한 사람의 목숨 값. 누군가의 생명 같은 사랑하는 딸, 언니, 누나, 동생, 친구의 목숨 값 500만원. 망자에 대한 윤리, 망자를 잃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는 비인간성.“저도 아이 둘 가진 아버지로서 가슴이 아프다. 모든 일에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이재용 부회장, 2016년 12월6일).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그 뻔뻔한 태도에 묻고 싶다. 그것이 마음 아픈 사람의 태도이고 책임을 느끼는 사람의 행동인지. 당신의 눈에는 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지.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이 사람들의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조금도, 아주 조금도 느낄 수 없는지.

©신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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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엽
동상 앞에 선 낡은 비장함

사진 이상엽·글 황현산(문학평론가·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아들을 낳기 위해 돌부처의 코를 떼어다 갈아 마시는 풍속이 있었다. 성스러운 권력이라 하더라도 거대한 힘이 물질로 형상화하면 이렇듯 성적 상상력도 그 품에 끌어안기 마련이다. 물론 부처는 인자하다. 소박한 욕망에 제 몸을 떼어내어 적선한다 할까. 난폭한 권력이 석상이 되거나 동상이 되면 그 사정이 사뭇 다르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그 권력은 무협소설 속의 괴한들이 ‘흡성대법(吸星大法)’을 하듯 이런저런 거친 욕망과 음란한 상상력을 빨아들여 제 동력으로 삼는다. 이미 영험은 잃었지만 제 몫의 젯밥은 챙길 줄 아는 추억 속의 정치적 구호들이 그 의복 노릇을 하니 때로는 비장함조차 없지 않다. 벌써 낡아버린 비장함이지만.

© 전상진
악몽을 끝내고 인간의 꿈을 꾸길

사진 전상진·글 진선미(국회의원)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왼쪽)·민대홍(오른쪽)씨를 만나면서 국가폭력의 비극이 얼마나 끈질기게 피해자들의 삶을 따라다니는가 생각했다. 그들은 어느 날 형제복지원이라는 지옥에 끌려갔고 이후 30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폭력은 피해 생존자들의 삶에 그늘을 드리운다. 육체적 후유증, 잃어버린 가족, 사회에 대한 불신, 저학력과 가난으로 말이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 한 사람 한 사람한테서 인간으로서 품위를 회복하고픈 의지를 느낀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이삿짐을 나르고, 육아를 하고, 노점상을 하는 노동자로 고된 매일을 살아왔다. 또한 그들은 형제복지원을 만든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인 정부와 여당을 향해 증언, 농성, 청원, 인권위 제소, 1인 시위, 서명운동, 출판, 연극, 삭발, 단식을 하며 싸워왔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은 매일 꿈을 꾼다. 새해에는 악몽을 끝내고 인간의 꿈을 꾸길 빈다.

© 시사IN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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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못해 내려온 날 연행되었다

사진 이명익·글 송경동(시인)

2016년 6월8일. 하늘로 오른 지 363일 만에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한규협·최정명이 땅으로 내려왔다. 서울시청 광장 옆 국가인권위원회(이전하기 전) 건물 광고탑 위였다. 몸 가릴 것 하나 없는 허공에서 1년을 보내야 했다. 새들도 둥지를 틀지 않는 곳, 붙잡을 것 하나 없는 곳에서 눈·비·강풍을 맞으며 1년을 버틴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현대자동차 사측은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정에도 불구하고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않았다. 1100만 비정규직의 삶이 그토록 가팔랐다. 인권을 지켜줘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는 고공 농성 도중 재빨리 도망 이사를 가버렸다. 용역 깡패들에게 막혀 밥 한술 올라가지 못한 날도 많았다. 죽지 못해 내려온 날, 경찰은 승냥이 떼처럼 애초 약속을 깨고 강제 연행을 하려 했다. 눈물 없이는 견딜 수 없던 날, 분노 없이는 견딜 수 없던 날. 남겨진 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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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희
안전을 관철하다

사진 윤성희·글 이오성 기자

‘박근혜 게이트’가 정국을 집어삼키는 동안 철도 노동자들이 74일간 총파업을 벌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성과연봉제와 인력 감축, 안전업무 외주화 등에 대한 반발이었다.이들은 파업에 돌입하며 ‘세월호의 선장’이 될 수 없노라고 선언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총파업은 이례적으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12월9일 현장으로 복귀한 전국철도노조는 정치권에서 성과연봉제 원점 재검토를 약속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고 자평했다.

© 김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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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자

사진 김승구·글 장일호 기자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반복을 거듭하며 몸을 불린다. ‘설마’ ‘말도 안 돼’라는 우리의 기준은 그 앞에서 무너진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수치도 없이 많은 것을 폐허로 만들었다. ‘국정 농단’이라는 단어에 스민 분노마저 충분치 못하다. 그 앞에서 현실성 같은 걸 따져 무엇할까.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문장을 망연히 더듬어본다. “신기한 것들에 한눈팔지 말고,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세요. (중략) 질문 자체가 답이에요. 어떤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에요.”(<무한화서> 이성복지음, 문학과지성사)

©김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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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근
저승의 숨으로 이승의 여신이 되다

사진 박정근·글 서명숙(제주올레 이사장)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농사지을 땅은 변변치 않은 제주의 해안마을에서 제주 여성들의 직업적 선택지는 오로지 해녀뿐이었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그 직업이 어찌나 힘들고 고달팠던지 해녀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일러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고 자조하곤 했다. 그런 해녀가 2016년이 저물기 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정식 등재되었다. 그 어떤 문명의 이기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숨’ 하나에 의지하면서 자연, 생태계와 공존하는 에코 페미니즘의 전사, 애기 해녀의 망사리에 자신의 ‘물건’을 던져주고 나이 든 해녀들에게는 ‘할망바당’을 보장하는 공동체 정신의 소유자, 제주 해녀는 살아서 여신이 된 여자들이다.

'2019 올해의 사진'에 참여한 사진가

김석진

학교 현장의 관찰자이자 참여자로 그곳의 과거·현재·미래를 고찰한다.

성남훈

프랑스 파리 사진대학 ‘이카르 포토(Icart Photo)’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하고 프랑스 사진 에이전시 라포(Rapho) 소속 사진가로 활동했다. 현재 전주대 문화산업대학원 객원교수이며 사회공익적 사진집단 ‘꿈꽃팩토리’를 이끌고 있다. <꿈꾸는 들녘> <소록도> <유민의 땅> <아프리카에서 꿈을 찍다> 등을 출간했다.

장진영

노동자와 노동하는 공간을 찍고 싶다. 특히 산재 노동자에 집중하려 한다.

김승구

‘전원 풍경을 표방하는 도시와 도시 문화를 모방하는 근교’ 사이를 오가며 사람·사물·건축·공간·양식 등을 기록해왔다. 우리 시대의 욕망과 삶을 들여다보려 한다.

신병문

대학에서 지리학을 공부했다. ‘한국의 발견-우리 삶과 문화, 풍경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주제로 우리 땅 구석구석을 다니며 작업을 해왔다. ‘하늘에서 본 우리 땅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주제로 2020년까지 하늘과 땅에서 대한민국을 기록한다.

전상진

비정규직 노동자, 군대, 집회, 시위 등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좋아하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고민할 때가 많다.

김지연

역사적 맥락을 짚어가며 한민족 디아스포라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옌볜의 탈북자, 일본·중국·사할린 동포들을 17년간 렌즈에 담았다. 국내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도시 빈민 문제 등에 대한 작업을 했다.

신웅재

뉴욕과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포토 저널리스트이다. 인권과 사회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한다.

정성태

어두운 역사 속에서 모티프를 찾아 다큐멘터리로 표현한다. 2016년 4월에 발표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작업과 현재 진행 중인 ‘까레이스키:고려인 가족’ 작업도 그 실험의 연장선이다.

김현준

광장에 모여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자본과 권력에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 등 현장의 다양한 모습을 렌즈에 담아냈다. 이미지의 미적인 측면뿐 아니라 그 속에 들어 있는 스토리를 담고자 했다.

양태훈

다양한 이념이 얽힌 한국 사회와 그 이면을 소박하게 담고 있다.

정운

스스로 사진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법학도이다. 지금은 노동·여성 문제에 함께 목소리를 내는 페미니스트 사진 노동자이다.

노순택

길바닥에서 사진을 배웠다. 배우긴 했는데, 허투루 배운 탓에 아는 게 없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맨다. 학창 시절부터 북한 괴뢰집단에 관한 얘기를 들어온 터라 그들이 대체 누구인지 호기심을 품었다. 분단이 파생시킨 작동과 오작동의 풍경을 수집한다.

윤성희

글 쓰다 사진 찍는 사람,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정택용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생태를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에 관심이 많다. 대추리나 제주 강정, 밀양, 그리고 숱한 노동 현장에서 ‘이 나라엔 대접받는 1등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고 사진을 찍는다

달여리

쫓겨남, 일상의 비일상화에 호기심이 많다. ‘기록’에 관한 작업을 준비 중이다.

이규철

우리 땅과 고유한 문화를 기록해왔다. 민속신앙(民俗信仰), 지질노두(地質露頭) 작업을 하는 중이다. <군인, 841의 휴가>(2002) 외 네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조진섭

세상에는 소외된 이들이 많다. 1990년대 발칸 반도에서 발생한 난민부터 아프리카, 시리아, 이라크 난민까지, 끊임없이 난민을 마주하고자 했다. 그들과 나는 같은 인간이다.

박민석

‘현장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곳을 누빈다. 현장의 치열함 속에서 떨어져 나오는 시각적인 파편을 줍는다.

이상엽

르포르타주 작가이자 사진가로 일한다. 책을 주로 쓰고 가끔 전시를 연다. 신자유주의로 황폐한 변경의 사람과 풍경을 기록한다.

주용성

우리와 가까이 있지만 동떨어진 듯한 사람들과 공간을 찍고 있다.

박정근

주변 사람들과 ‘나’를 주제로 작업 중이다. 어쩌다 제주에 내려가 해녀들과 몇 년 긍긍하던 사진이 올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서연

젠더 이슈에 관심이 많은 페미니스트 사진 노동자이다.

채원희

역사의 현장을 역사의 현실로 만들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노혁명가 백기완 선생을 주로 찍는다. 온몸으로 역사의 풍파를 겪어온 백 선생의 몸짓과 표정을 포착한다.

박준수

독일 라이프(Laif) 에이전시 소속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유가족 이야기를 기록해왔다.

장성렬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 사진, 특히 사회의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 버려진 땅, 건물들을 담는다.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고, ‘가장자리(Frontier)’라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팀의 대표다.

CaKon

이름은 전구성이다. 현대 조형과 건축의 의문점을 주제로 작업한다. 작업의 방향은 ‘소실점’이다. ‘현상 이상의 상상’을 궁리한다.